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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2026년 3월호] 예비타당성조사의 정치경제학 | ||||
| 작성자 | 재정정보분석부 | 등록일 | 2026-03-30 | 조회수 | 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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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타당성조사의 정치경제학 옥동석 인천대학교 명예교수 (前 조세재정연구원장) ![]()
1. 1997년 외환위기 이전의 타당성조사 한국은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으로 연평균 10% 이상의 실질성장률을 달성하며 투자규모가 대형화하고 투자계획 관련 문제들이 복잡하게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정부는 전문적 기법에 의한 평가 필요성을 인식하여 1970년에 경제기획원 훈령 제50호로 ‘투자사업심의회 규정’을 마련하였고, 1977년에는 경제기획원 내에 투자심사 전담 조직(투자심사국)을 설치하였다. 투자심사국은 ‘재정투자 사업’에 대해서는 예산실의 의뢰로, ‘외국차관 도입 사업’에 대해서는 재무부의 의뢰로 투자사업 심사의견을 제시하였다. 당시 투자심사의 주요 항목들은 시장성, 투자규모의 적정성, 입지조건, 수익성, 산업정책과의관련성 등으로 구성되었다.1) 1980년대에 들어와 정부차관이 줄어들면서 투자심사 기능은 예산이 투입되는 ‘재정투자 사업’에 집중되었는데, 경제기획원은 후생경제학적 비용편익분석을 기반으로 하는 사업별 지침을 발간하며 사업주관 부처의 타당성 평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경제기획원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 결과를 기초로 1979년에 「공공부문 투자사업의 경제성 평가」를, 1982년에 「투자심사편람(운수부문)」과 「투자심사편람(상하수도 부문)」을 각각 발간하였다. 특히 서울대 행정대학원 김동건 교수는 교역가격을 기준으로 하는 OECD 방법의 적용이 한국에서는 부적절하다고 비판하며 선진국에서 널리 사용되는 후생경제학적 비용편익분석을 적극 옹호하였다.2) 1990년대에 들어와 경제기획원이 폐지되고 재무부와 통합한 재정경제원이 출범하면서 투자 사업의 타당성 평가는 사업 주무부처 중심으로 완전히 이관되었다. 이 때문에 타당성 평가는 범정부적인 일관성을 상실하였다. 전력산업에서는 전원개발계획 수립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할인율을 사회적 할인율 개념으로 접근하며(전력산업의 공익성을 반영하고자) 범정부적 관점에서 추정하는 연구들이 1990년대에 활발하게 이루어졌다.3) 그리고 교통부문의 고속도로 기본설계에서는 공학자들이 후생경제학적 소비자잉여 개념을 활용하여 타당성 평가를 시도하였는데 차량운행비, 유지관리비, 시간당 가치 등 주요 계수들을 사업별로 일관성 있게 적용하지는 않았다. 2. 예비타당성조사의 등장
한국의 타당성 평가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나타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였다. 당시 예산당국이었던 기획예산위원회(위원장 진념)는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재정절감을 위해 사업부처의 타당성조사들을 전면 조사하였는데, 1994년~1998년 중 타당성 조사가 마무리된 33개 사업 중 ‘타당성 없음’으로 조사된 건수는 1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파악하였다.4) 예산당국은 사업부처 주도의 타당성 분석이 편파적으로 진행된다는 문제를 지적하며 예산당국이 직접 중립적인 시각에서 주도하고자 하였다. 이에 각 부처가 강력하게 반발하자, 예산당국은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 법률 대신에 대통령 시행령에 예비타당성조사의 근거 규정을 신설하였다. 즉, 1999년 4월에 예산회계법 시행령 제9조의2 “각 중앙관서의 장은 총사업비가 500억 원 이상인 사업… (중략)에 대하여는 예비타당성조사비, 타당성조사 및 기본설계비, 실시설계비, 보상비와 공사비의 순서에 따라 (중략) 요구하여야 한다”는 규정을 명문화하였다. 연이어 예산당국은 자신의 소관 하에 있던 한국개발연구원(KDI)에 20개의 공공건설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를 의뢰하였다. KDI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활용하여 타당성조사를 수행하였는데 타당성조사의 일반지침에 대한 연구도 병행하였다. KDI 연구진은 일반지침 연구에서 후생경제학적 비용편익분석의 채택을 천명하였다.5) 비용편익분석이란 공공사업의 영향들을 재화와 서비스 시장에 대한 영향으로 파악하고, 이들을 소비자 지불용의(willingness to pay)로써 화폐화하는 분석 도구이다. 이는 국내의 시장가격 체계가 충분히 발달한 선진국에서 채택가능한 방법인데, 한국도 개발도상국 지위를 벗어나 시장기능이 충분히 발전하였기에 이러한 방법의 채택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KDI는 개별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 결과를 비용편익분석을 적용한 ‘경제성 분석’과 비용편익분석이 적용되기 어려운 ‘정책적 분석’으로 구분 제시하였다. 경제성 분석은 수요 추정, 편익 및 비용의 추정, 재무분석, 민감도 분석 등 화폐적 가치로의 전환이 가능한 항목들을 평가하였다. 경제성 분석에서는 대부분 시장가격이 활용되지만 시장실패로 인한 비(非)시장적 재화와 서비스에 대해서는 잠재가격(shadow price)을 적용하였다. 반면 정책적 분석에서는 지역경제 파급효과, 지역균형개발 효과, 재원조달 가능성, 국고지원의 적합성, 민자유치 가능성, 환경·국방·문화 등의 고려사항 평가, 지역의 이해도 및 추진의지 평가 등을 논의하였다. 예산당국은 각 사업별 예비타당성조사 보고서를 기초로 ‘추진사업’, ‘추진 보류사업’, ‘중장기 검토사업’으로 구분하였는데, 이들 결과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보고함으로써 지역구 사업에 민감했던 국회의원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6) 특히 예비타당성조사에서는 개별 공공사업에 대한 비용과 편익을 추정하여 제시함으로써 편익·비용 비율이 최소한 1을 상회하여야 재정자금을 투입할만한 사회적 가치가 인정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형성될 수 있었다. 이처럼 예비타당성조사의 전문성과 객관성이 널리 인정되면서 예산당국은 이 제도를 더욱 발전시키고자 2000년에 KDI ‘공공투자관리센터’를 설치하였다. 3. 다기준분석으로서의 AHP 도입
그런데 예비타당성조사에서 KDI 연구진은 예산당국으로부터 정량적 분석(경제성 분석)과 정성적 분석(정책적 분석)을 통합한 ‘단일점수’를 요구받으며 상당한 고민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단일점수’에 대한 예산당국의 요구는 투자사업에 대한 최종결정의 정치적 책임을 명시적으로 부담하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예비타당성 조사보고서의 작성 책임과 보고서 내용을 바탕으로 한 투자결정 책임이 엄격하게 구분되어야 한다는 당시 KDI 연구진의 항변에서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예비타당성 조사팀 임무는 …(중략)… 최종결정을 내리는 기관 혹은 기구에 대하여 최종결정을 가장 합리적으로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료를 생산하는 것이라고 전제한다면 …(중략)… ‘단일점수화’하여 결론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자료를 보고서에 병렬적으로 나열만 하는 것이 오히려 최종결정을 내리는 기관으로 하여금 편견 없이 최선의 선택을 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7) 그러나 이듬해인 2000년에 KDI 공공투자관리센터는 예산당국의 ‘단일점수’ 요구에 부응하고자 ‘다기준분석’인 AHP(Analytic Hierarchy Process)를 도입하기로 결정하였다.8) 다기준분석(Multi-Criteria Analysis)은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항목들을 구분하고 각 항목별 점수에 가중치를 부여하며 가중합산된 종합점수를 제시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다기준분석의 결정적인 단점은 항목별로 부여하는 가중치가 임의적이고 자의적으로 결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AHP는 다기준분석의 한 종류이지만, 그 가중치들을 그나마 전문적이고 객관적으로 결정하는 방법이다. AHP는 다섯 단계로 구분되는데, ① 의사결정집단이 문제를 명확하게 하는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 → ② 문제에 대한 목표-대안의 계층 구조 설정(Structuring) → ③ 평가항목들의 쌍대비교를 통한 가중치 설정(Weighting) → ④ 점수평가(Measurement) → ⑤ 일관성을 위한 재검토(Feedback) 단계 등으로 구성된다.9) 이러한 AHP는 의사결정집단의 구성 요원들에 따라 그 결과가 좌우될 수밖에 없지만, 대상사업에 대한 전문성과 객관성을 갖춘 관련 분야 전문가들로(예산담당 공무원, 조사 연구진, KDI 공공투자관리센터 연구진 등) 구성하면 나름대로 합리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물론 비용편익분석 역시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항목들에 대해 가중치를 부여하며 ‘단일 수치(또는 순편익 금액)’를 도출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비용편익분석은 그 가중치를 소비자의 ‘지불용의’라는 가치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특성을 가진다. 다시 말해 비용편익분석은 시장가격이라는 가중치를 기준으로 공공사업의 영향을 비용과 편익이라는 화폐적 척도로 평가하는 방법인 것이다. 물론 비 시장적 가치들에 대해서는 암묵적인 시장을 상정하여 소비자들의 지불용의가 얼마인지를 추론한다. 이러한 잠재가격 평가는 영미권 경제학계에서도 2000년 이후에 본격적으로 발전하였기에 당시 한국에서는 잠재가격 분석 방법이 충분히 발전하지 않았다. 만약 KDI 연구진이 잠재가격들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었다면 예산당국의 ‘단일점수’ 요구에 적절히 부응할 수 있었을 것이다.10) 당시에는 이러한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기준분석으로서의 AHP 도입은 불가피했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4. AHP 가중치의 정책적 결정 AHP 분석의 가중치들이 AHP 평가팀의 구성에 따라 달라진다는 내용이 점차 알려지면서 많은 전문가들은 AHP 분석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2004년 KDI는 AHP 분석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평가자들을 확대하고, 당시까지 누적된 AHP 평가자들의 설문조사를 근거로 표준적인 가중치를 사전에 제시하는 방법으로 전환하였다.11) 2004년 이전에는 AHP 평가팀이 평가항목들의 가중치를 결정하는 방식이었는데, 2004년부터는 과거 자료를 이용한 표준 가중치를 사전에 제시하기로 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KDI는 2001~2004년 도로·철도부문 설문자료를 활용하여 경제성 분석의 표준 가중치를 45~65%로 결정하였다. 더구나 2005년부터는 정부가(당시 기획예산처) AHP 분석에서 ‘항목별 가중치 산정이 평가자 의견에 전적으로 좌우됨에 따라 평가자의 주관이 평가결과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며 표준적인 가중치 산정을 정부의 정책적 판단 영역으로 간주하기 시작하였다.12) 또한 정부는 AHP 분석에서 지역균형발전 요소의 비중이 미미하여 ‘수도권 지역의 경제적 타당성이 높게 나와 대형투자사업의 지역 간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해소되지 못한다’며 ‘지역균형발전’ 항목을 명시적으로 도입하였다. 이에 따라 정부는 가중치 산정 범위를 경제적 타당성(40~50%), 정책적 타당성(25~35%), 지역균형발전 타당성(15~25%)으로 구분하여 제시하였다. 이러한 2005년의 정부 조치는 ‘브레인스토밍을 통한 자율적 집단결정’이라는 AHP 본연의 취지를 훼손하는 것인데, 이는 사업결정이 정치적 과정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007년 ‘국가재정법’이 제정·시행되면서 예비타당성조사에 대한 규정은 시행령에서 법으로 이동하였다. 이에 따라 예비타당성조사의 법령 체계는 아래의 <표>와 같이 정렬되었는데, 2007년의 ‘국가재정법’과 그 시행령, 2009년의 ‘예비타당성조사 운용지침’, 2017년의 ‘예비타당성조사 수행 총괄지침’, 그리고 KDI의 사업부문별 세부지침 등으로 체계화되었다. 여기서 특히 유의할 점은 ‘예비타당성조사 운용지침’이라는 기획예산처 훈령에서 AHP 분석을 위한 항목별 가중치를 구체적으로 책정하여 제시한다는 점이다. 이 운용지침에 명문화되어 있는 항목별 가중치는 필요에 따라 수시로 변경되고 있으며, 심지어 잠재가격으로 화폐화할 수 있는 항목들까지(일자리, 생활여건, 환경성, 안전성 등) 정성적인 정책성 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이는 예비타당성조사의 가중치들이 정부의 정책적 또는 정치적 결정 변수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 5. 정치적 판단과 전문적 판단의 분리 이처럼 AHP의 가중치가 정치적 정책변수로서의 성격을 분명하게 하면서 2016~2019년 기간 동안 이들 수치는 매년 변경되었다. 이러한 수시적인 변동은 종합평가의 항목별 가중치 선택이 전문가적 추정의 영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김태일 교수는 AHP의 방법론적 내용을 자세히 분석하면서 이러한 성격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았는데, 그 한계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타당성 분석에 AHP를 적용하고 그 결과에 의해 타당・부당이 기계적으로 결정되는 것은 우리의 독특한 제도이다. AHP는 실제로는 주관적·정성적인 평가지만 마치 객관적·양적인 평가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기 쉽다. 예타에서 AHP를 적용하게 된 데는 이러한 특성이 고려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예비타당성조사 운용지침에서 천명한 예타 목적인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조사’를 위해서는 AHP가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관적·정성적 평가를 객관적·양적 평가처럼 받아들이게 하는데, 이러한 특성은 양날의 칼이 된다. 기존에 KDI가 담당했을 때는 개발사업을 선호하는 정치권의 압력에 일정 부분 저항함으로써 ‘예산 낭비를 방지’하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가중치 변경과 함께 AHP 평가 주체를 기재부 주관으로 옮기면 이전과는 반대의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다.13) 이러한 지적은 1999년 KDI 연구진이 제기했던 ‘전문적 조사보고와 정치적 최종결정 사이의 책임 분화 부재’라는 근본 원인과 맥을 같이 한다. 그렇다면 예비타당성조사의 핵심 과제는 공공사업에 대한 전문적 ‘조사보고’와 정치적 ‘최종결정’의 역할 분화를 보다 명확하게 정립하는 것이어야 한다.14) 시장가격을 활용한 비용편익분석은 전문적인 ‘조사보고’의 영역에 속하고, 정량적 분석과 정성적 분석에 대한 ‘종합평가’는 정치적인 ‘최종결정’의 영역이 되어야 한다. 행정부와 국회는 개별 사업에 대한 ‘최종결정’에서 각 항목들에 부여한 가중치 그리고 그 결정의 논거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국민들이 이들을 감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정치적인 ‘최종결정’을 전문적인 ‘조사보고’의 영역으로 위장하는 것은 정치적인 책임을 모호하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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