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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호] ‘ IMF 경제위기 대응’ 시기 재정정책의 전개와 역사적 시사점
제목 [2026년 6월호] ‘ IMF 경제위기 대응’ 시기 재정정책의 전개와 역사적 시사점
작성자 재정정보분석부 등록일 2026-06-29 조회수 130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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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경제위기 대응’ 시기

재정정책의 전개와 역사적 시사점


우명동 성신여자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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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부


국민의 정부는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IMF 구제금융 신청이라는 사상 초유의 국가위기 상태에서 국가 운영의 책임을 맡게 되었다. 어느 정부나 새로운 정부를 운영해나가기 위해서는 당시 정부가 처한 사회 경제적 여건에 대한 진단과 더불어 그에 상응하는 정책 기조 내지 정책 방향을 설정하고, 이어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수행하면서 새로운 정부의 정책을 펼쳐나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는 과거 어떤 정부와도 달리 IMF라는 국제기구가 구제금융을 지원해주면서 제시한 ‘경제프로그램’의 이행이라는 외적인 조건 속에서 출범하였던 관계로 정부의 각오와 대응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먼저 국민의 정부는 새로운 국정과제를 수립함에 있어 지난 역사로부터 우리 사회가 물려받아 지양해야될 유제(遺制)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미확립”에서 찾고 있었으며(대한민국정부, 『국민과 함께 내일을 연다: 「국민의 정부」 경제 청사진』, 1998, 19), 이러한 인식 위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병행발전”시키는 것을 “국민의 정부의 기본철학”으로 정립하였다(같은 책, 51). 이와 같은 인식 위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경제적 자유와 엄격한 자기 책임, 시장경쟁을 통한 보상, 균등한 기회의 보장, 내·외국인을 차별하지 않는 시장개방을 기본원칙으로 공공부문·금융·기업·노동 4개 분야의 구조개혁을 빠른 시일 내에 마무리할 것”(같은 책, 67)이라는 의지를 밝히고, 4대부문 개혁을 본격적으로 추진해나갔다.


바로 이와 같은 국민의 정부 기본철학을 반영하여 구체적으로 수행된 ‘공공부문’의 개혁에서는 “작지만 봉사하는 효율적인 정부”를 기초로 “정부의 역할과 기능을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경제체제에 맞도록 재조정”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으며, ‘금융부문’ 구조개혁에서도 같은 맥락에서 금융기관도 기업처럼 “영리 기관으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개혁해나가는 데 주력하였다. 그리고 ‘기업부문’ 구조개혁에서도 “시장의 경쟁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구조조정을 유도해나가는데 주력하였으며, 아울러 ‘노동시장’ 개혁에서도 고용 조정제, 근로자파견제 등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혁정책을 추진해나갔다.1) 한편 이와 같은 4대부문 개혁과제들이라는 것도 대부분 재정정책 측면에서 물질적 뒷받침하에 비로소 실질적으로 실행에 옮겨질 수 있다는 점에서 재정정책 측면에서도 유사한 맥락에서의 다양한 제도개혁을 추진해나갔다.


일반적으로 재정정책이라는 것은 공권력의 강제력에 바탕을 두고 조세의 징수와 세출 활동을 해나가면서 기업의 축적행태(양식)를 비롯하여 경제주체들의 경제(활동)행태를 일정한 방향으로 선도해가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다른 제반 정책들이 추구하는 성과 여부를 결정짓는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특성을 갖고 있다. 특히 국민의 정부와 같이 전대미문의 IMF 경제위기 국면을 극복하고 나아가 “21세기 경제 강국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하는(기획예산위원회, 『「국민의 정부」 국정과제』, 1998, 7) 보다 적극적인 정책적 역할을 수행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재정정책이 경제주체들로 하여금 그에 상응하는 생산적인 경제행태를 선도해내는 것이 선결 요건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이하에서는 재정정책이 수행하는 이와 같은 사회경제적 맥락을 유념하면서, 국민의 정부 시기 재정정책을 비롯한 제반 정책이 경제위기로부터 벗어나서 새로운 경제 질서의 틀을 구축하는데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였는지를 규명해보고자 한다.


1) 국민의 정부가 제시한 이와 같은 4대부문 구조개혁의 청사진에 대해서는 같은 책 제II부, 그리고 개혁의 성과에 대해서는 국정홍보처, 『국민의 정부 5년 국정자료집』 2. 경제, 2003. 제3편을 참고 바람.


재정정책의 전개와 사회경제적 귀결


1. 재정정책의 전개와 재정적 성과


이하에서는 먼저 IMF 경제위기 국면에서 정권을 획득한 국민의 정부가 국정과제 등을 통해 제시하였던 재정정책의 기조와 이에 상응하는 재정제도 개혁의 내용을 개관해보고, 이어서 그러한 과제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시행된 재정정책운영의 재정적 성과를 재정규모 및 재정수지와 세입 및 세출 구성면에서 나타나고 있는 변화추이를 통해서 살펴본다.


(1) 재정정책 기조와 제도개혁


1) IMF 경제 프로그램과 재정정책 기조


IMF는 우리 정부와 구제금융을 타결하면서 우리 정부가 이행해나갈 경제프로그램을 제시하였다.2) ​이 프로그램에는 재정정책을 비롯하여 통화 및 환율정책, 금융부문 구조조정, 기업지배구조, 노동시장 개혁 등 여러 부문에 전방위적인 요구사항을 담고 있었다. 그중에서 본고의 주제인 재정정책과 관련된 내용을 보면, 금융부문의 고이자율정책과 더불어 재정 면에서는 무엇보다 균형 재정 달성을 위해 긴축재정정책을 펼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법인세, 교통세, 특별소비세, 소득세, 부가가치세 등의 징수를 늘리고 경상지출과 순융자를 줄이며 우선순위가 낮은 자본지출도 줄이도록 요구하였다. 이러한 IMF의 요구조건에 직면하여 우리 정부는 그러한 요구를 적극 수용하는 방향으로 긴축적인 정책 기조와 제도개혁을 추진해나갔다.


그러나 이러한 긴축정책의 수행과 더불어 강력하게 추진되었던 구조조정의 여파로 실업이 증가하고 성장세가 위축되면서 오히려 재정수지는 적자 규모가 커가는 양상을 보이자, 우리 정부는 IMF와의 협상을 통해서 적자재정정책의 필요성을 호소하였으며, IMF도 이러한 사정에 공감하여 급기야 1998년 5월 2일 협상에서는 1.75%의 재정적자를 허용하였으며, 동년 7월 24일 협상에서는 경제활동 지원 및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해 1998년도 제2차 추가경정예산에서 GDP 대비 4%의 적자 규모를 허용하기에 이르렀다.3) 이러한 과정을 거쳐 우리 정부는 1998년 9월 16일 적극적인 재정 역할을 담아낸 제2차 추가경정예산안을 통과시키기에 이르렀다. 이어 1999년 3월 10일 협상에서는 1999년도 예산에서도 GDP 대비 5%까지의 재정적자를 허용하면서, 우리 정부는 1999년 들어서면서 경기회복을 위한 보다 적극적인 확장적 재정정책과 함께 위기의 원인으로 지적된 금융·기업·노동·공공부문 등 4대부문의 개혁을 본격적으로 추진해나갔다. 이 과정에서는 1998년에 이어 적자재정기조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확장적 정책수행으로 경제가 회복국면으로 진입하면서 2000년부터는 다시금 흑자국면으로 돌아서고 있었다.


이렇게 국민의 정부는 1998년 전반기와 후반기 이후 시기에 재정 정책적 대응에 일정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던바, 이하에서는 이렇게 달라지는 정책 기조 변화추이를 염두에 두고 구상하고 실행해나간 재정제도 개혁의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제도개혁 구상과 실행


재정제도 개혁 내지 혁신 관련 과제는 ‘국정과제(기획예산위, 1998)’나 ‘경제청사진(대한민국정부, 1998)’에서 명시적으로 독립된 주제로 다루지 않고 공공부문 내지 정부부문 개혁의 일환으로 또는 다른 부문의 개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의 형태로 제시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주요 내용으로는 중기재정활성화 등 결과지향형 예산의 운용, 사업타당성 검토 등을 통한 예산 효율성 제고, 나아가 기금제도 개혁 등을 통한 예산의 투명성·책임성 제고 노력, 고객만족 제고를 위한 지출구조 개혁 등을 들 수 있다.


아울러 세제면에서 재산 과세 강화, 감면 축소 등을 통해 공평한 세제를 추구하며, 유사세목 통폐합 등을 통해 세제 간편성을 높이고, 나아가 근거과세 확립 등 세정개혁을 추구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정의롭고 투명한 세제와 세정을 확립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추진하고자 하였다(기획예산위원회, 전게서, 36-37; 대한민국정부, 전게서, 127-135). 아울러 경제구조 개혁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실업자를 지원하기 위하여 사회안정망을 확충해나가고(대한민국정부, 전게서, 81), 특히 자활·자립기반에 바탕을 둔 생산적 복지제도를 구축하고, 전국민 사회보험 실현, 복지서비스 다양화 등 민간복지 활동을 활성화해나가기로 하였다(대한민국정부, 전게서, 311-321).


이러한 개혁과제는 상당 부분 실제로 제도개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먼저 1999년도와 2001년도의 2차에 걸쳐 「기금관리기본법」을 제·개정하여 기금도 예산과 마찬가지로 국회의 심의와 의결을 받도록 하고, 불필요하거나 불합리한 기금을 통·폐합하는 등 기금관리제도를 개혁하였다. 뿐만 아니라 1999년 4월에는 대형 공공투자사업의 효율적 수행을 위해 ‘예비타당성제도’를 도입하였으며, IMF 위기 극복과정에서 방만한 정부 운영을 개선하기 위해 재정개혁과제의 일환으로 1999년부터 성과주의예산제도를 시범 실시하였으며 차츰 그 실시범위를 넓혀나갔다. 이외에도 예산편성과 집행과의 연계 강화를 통해 재정 운영의 효율성을 증대시키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는 등 전술한 4대 부분의 개혁을 뒷받침하고 선도해나가기 위한 다양한 재정개혁과제를 이행해나갔다(당시 추진되었던 재정개혁의 제도적 성과는 기획예산처 『국민의 정부 공공개혁백서』, 2002, 212-251 참고). 아울러 이와 같은 공공부문 개혁의 일환으로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하였는 바, 실제로 2002년 연말까지 목표로 하였던 11개 민영화 대상 모기업 중에서 국정교과서, 포항제철, 한국중공업 등 8개 기업을 민영화하였다(기획예산처, 같은 책, 82-95). 뿐만 아니라 1998년에서 1999년에 걸쳐 고용보험, 국민연금, 건강보험 제도를 확충하였으며, 2000년에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실시하는 등 사회보장 및 복지부문의 제도도 확충하였다.


(2) 재정정책 운영과 재정적 성과


1) 재정규모와 재정수지


먼저 국민의 정부는 중앙정부(일반회계, 특별회계, 기금 등) 통합재정기준으로 볼 때 재정규모는 문민정부 시기 줄곧 GDP 대비 17.0% 수준을 유지하던 것이 1997년 IMF 경제위기를 맞으면서 19.3%까지 올라간 상태에서 정권을 물려받아 집권 첫해 1998년에는 경제위기 대응을 위해 대폭 경비 수준이 늘어나면서 GDP 대비 22.4%까지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듬해 1999년부터는 다소 진정추이를 보여 1999년에는 21.5%, 2000년 21.0%, 2001년 20.3%, 그리고 마지막 해에는 18.2%로 점차적으로 상대적인 재정규모가 낮아지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추이를 보고 당시 재정규모가 이전 문민정부 시기에 비해 크게 높아진 것으로 해석하는 데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재정규모의 증가 추이는 GDP 대비 상대적 비중을 보인 것으로서, 재정규모 자체만 보면 전년 대비 1997년 재정규모 증가율이 18.6%이었던데 비해 1998년에는 오히려 크게 낮아진 15.1% 수준을 보이고 있으며, 이듬해 1999년의 전년 대비 증가율 5.1%, 2000년에는 7.3%, 2001년 4.3%로 떨어지고 있었으며 2002년은 –0.9%의 증가율을 보임으로써 오히려 재정규모가 전년에 비해 떨어지는 현상까지 노정되고 있었다.4) 그럼에도 일반적으로 재정규모 팽창여부는 GDP 대비 비중의 변화를 가지고 판단한다는 점에서 보면, 국민의 정부 시기는 이전 문민정부 시기 경제위기국면에 접어들었던 1997년 19.3%를 제외하면 17%대에 머무르고 있었던 것에 비하면, 확장적 재정정책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은 여전히 사실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재정수지 면에서는 1993년을 기점으로 문민정부 시기 줄곧 0.5% 전후 수준의 약간의 흑자상태에서 균형을 유지해오던 통합재정수지가 1997년 –1.1%적자로 돌아서고 IMF 경제위기가 본격화된 1998년에는 –3.4% 수준까지 적자 수준이 높아지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5) 그러던 것이 1999년 –2.2%를 마지막으로 2000년에는 다시 흑자로 돌아서 1.2%, 2001년에도 1.5% 수준을 보였던 것이 2002년에는 3.6% 수준까지 높은 흑자를 보였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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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을 보면, 이러한 사실은 1998년 재정규모의 GDP 대비 비중이 22.4%로 높아졌을 때 재정수입의 GDP 대비 비중은 19.1%에 지나지 않았지만, 1999~2002년 기간 재정규모의 GDP 대비 비중은 21.5%, 21.0%, 20.3%, 18.2% 수준을 보이고 있었던 데 비해, 재정수입의 GDP 대비 비중은 각각 19.3%, 22.2%, 21.8%, 21.8% 수준으로 재정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크게 증가하고 있었던 데 기인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재정수입의 GDP 대비 비중이 크게 늘어나게 된 배경으로는 1999년 이래 정부의 강력한 경기회복 정책의 추진에 힘입어 실질경제성장률이 크게 높아지면서 조세수입이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을 비롯하여 세외수입도 큰 폭으로 증가한 데 따른 것임을 알 수 있다(<표 3>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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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세출 구성 측면에 나타나는 특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표 2>에서 나타나고 있는 중앙정부 통합재정 세출 및 순융자의 기능별 구성을 보면,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사회보장 복지 부문의 구성비가 이전에 비해 큰 폭으로 높아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아울러 일반공공행정 부문의 비중 또한 1999년을 저점으로 그 비중을 크게 늘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에 비해 이전 정부들에 비해 문민정부 시기 크게 줄어들었던 국방부문의 상대적 비중은 국민의 정부 들어 더 큰 비중으로 줄어들고 있으며, 아울러 교육부문의 상대적 비중도 크게 줄어들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다. 다른 한편 경제사업 부문은 1998년과 1999년 종전에 비해 상대적 비중이 2% 전후 수준으로 높아지던 것이 2000년 이후로는 크게 늘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며, 특히 2002년에는 큰 폭으로 그 비중이 줄어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사회보장 및 복지 부문의 경비가 크게 늘어난 것은 유례없는 경제위기와 그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실업자 또는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해 전술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비롯하여 4대 공적 보험의 적용대상을 확장한 데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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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세출 구성면의 특성은 <표 3>의 경제적 분류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바, 경상지출 부문의 상대적 비중은 1998년에 61.8%를 저점으로 해서 해마다 비중을 큰 폭으로 높여갔으며, 국민의 정부 마지막 해였던 2002년에는 80% 수준에 근접하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기능별 분류의 사회보장 복지 부문과 일반공공행정 부문의 높은 비중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자본지출의 비중은 1999년에 큰 폭으로 그 비중이 높아지지만 이후 다시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가 다시 2002년에 큰 폭으로 높아지는 등 진폭을 거듭하면서도 평균적으로 보면 이전 정부와 유사한 비중을 보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자본지출 비중은 유사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면서 경상경비 비중이 크게 높아질 수 있었던 것은 그 이면에 순융자의 비중이 1998년을 정점으로 큰 폭으로 떨어졌기 때문인 것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이 시기 이렇게 전반적으로 경상지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게 높아지고 있는 것은 앞에서 본 사회보장 부문의 확충 뿐만 아니라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금융구조조정과 기업구조조정을 위해 대규모 공적자금의 투입과 이자보전에 따른 재정부담의 증가가 경상적인 세출요인의 증가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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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 3일 IMF와 대기성(Stand-by) 차관 협약을 체결한 이후 2001년 8월 23일 모두 상환하여 IMF로부터 졸업하기까지 10여 차례 ‘의향서(Letter of Intent)’에 합의하면서 구제금융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때 IMF는 우리나라가 요구한 차관을 제공하면서 차관 상환의 보증 차원에서 우리 정부가 이행해나갈 ‘경제프로그램(Economic Programs)’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3) Wang, Y. and H. Zang(eds.), Adjustment Reforms in Korea since the Financial Crisis: KIEP, 1998, 47 및 황상인·왕윤종·이성봉, 『IMF 체제하의 한국경제 종합심층보고 II 1998.7-1999.12』, 대외경제정책연구원, 1999, 49-51 등을 참고.

4) 이러한 재정규모 증감 추이는 중앙정부 공기업특별회계를 포함한 중앙정부 공공부문 통합재정기준 규모에서도 유사한 양상을 나타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표 1>과 같은 자료 참고).

5) 처음에 IMF가 제시한 ‘경제프로그램’에서는 긴축재정을 요구하고 있었는데도, 이와 같은 적자재정의 운영이 가능했던 것은 전술한 바와 같이 IMF와의 협상의 결과에 따른 것이었음을 참고하기 바람(앞의 ‘재정정책기조’ 부분 참고)

6) 이러한 재정수지 변화추이는 공기업특별회계까지를 포함한 중앙정부 공공부문의 통합재정 기준 재정수지에도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는바, 그 실적치는 1997년 –1.4%, 1998년 –3.7%, 1999년 –2.4%, 2000년 1.1%, 2001년 1.1%, 2002년 3.1%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기재부, 『2012회계연도 한국통합재정수지』, 2014, 24).


2. 실제 재정정책 운영의 구조적 특성


앞에서는 재정규모와 재정수지의 변화추이와 나아가 세입과 세출 구성 측면에서 나타난 특성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세입과 세출 구성의 변화는 사회경제실태의 일단을 읽어낼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총량적인 재정규모나 재정수지 자체에 비해 분석의 사회경제적 실익이 없지 않으나, 더 중요하기로는 그와 같은 구성의 이면에서 실제 현장에서 지출이 행해지고 수입이 징수되는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서로 다른 계층 내지 기업과 산업들로 구성되어 있는 경제 제 부문에 어떻게 서로 다르게 작용을 하는지, 즉 재정활동의 구조적 특성을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무릇 재정정책은 그 자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구조에 영향을 주는 금융정책, 산업정책 등을 비롯한 다른 주요 정책의 수행에 물질적 기초를 제공해주는 영역으로서, 이들과 유기적 관련을 맺으면서 서로 다른 경제주체들의 경제적 동기에 이질적인 작용을 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하에서는 먼저 IMF 경제위기 대응과정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였던 금융부문과 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재정정책이 수행한 역할에 초점을 맞추어 그 구조적 특성, 즉 이질적인 경제주체들에게 주는 정책적 유인구조를 규명해보고자 한다. 이어서 국민의 정부가 기업의 생산활동과 시민들의 삶의 터전으로서 부동산의 보유와 활용에 대해서 어떠한 정책적 입장을 취하고 있었는지를 더불어 규명해보고자 한다.7) 특히 여기서는 하나의 정책이 그 정책수행 대상으로서 경제주체의 행동에 어떻게 서로 다른 작용을 하는지는 관련 법규에 잘 반영되어 있기 마련이라는 점에서, 이하 논의에서는 당시 개별 정책의 내용을 규정짓고 있던 관련 법규의 변화를 중심으로 파악하고자 한다.8)


(1) 금융개혁(구조조정)과 재정정책 결합의 구조적 특성


국민의 정부가 추진한 4대부분 개혁 중에서 경제위기적 상황을 고려해보았을 때, 당시 경제주체들의 축적행태를 비롯한 경제(생활)행태에 가장 크게 영향을 준 것은 금융부문 개혁이었다 할 수 있다. 그런데 당시 금융개혁이라는 것은 곧바로 ‘공적자금’에 의한 구제금융을 통해서 행해졌기 때문에 당시 금융개혁의 구조적 특성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공적자금의 조달과 운용이 갖는 구조적 특성을 규명하여야 한다. 그런데 공적자금의 조달과 운용과정에서는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가 발행한 채권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나, 그것은 재정에 의한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런 측면을 유념하면서 이하에서는 먼저 당시 공적자금의 조달과 운영과정이 갖는 구조적 특성을 규명해보고자 한다.


이때 공적자금 마련을 위해 발행된 채권은 정부보증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으며, 해당 채권에 대한 이자는 재정부담이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제도하에서는 결과적으로는 공적자금의 지원과 회수를 담당하는 예금보험공사나 자산관리공사로서는 자기 책임성이 저하될 뿐 아니라 흔히 일컫는 도덕적 해이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9) 바로 이와 같은 공적자금관리구조는 금융기관뿐 아니라 최종적으로 지원의 수혜자였던 부실기업으로 하여금 지원의존적인 구제메커니즘에 의지하게 함으로써 고도성장기 우리 기업에 체화되어 있던 지대추구적 기업활동의 특성으로부터 온전히 벗어날 수 없게 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이러한 공적자금은 언뜻 보면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가 채권을 발행해서 투입되고 회수된 것은 재투입된 일부를 제외하고는 기 발행한 채권의 원금을 상환하는데 사용하여 직접적으로 재정자금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사실상 공적자금의 조성과 활용과정에 직접적으로 재정활동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이 상당 부분 포함되어 공적자금의 운용을 보장하고 있었다.10) 이렇게 공적자금 운영에 있어서 공적자금을 필요로 하게 한 원인 제공자로서 부실 대기업과 금융기관, 그리고 이들 기관의 대주주나 경영진 등에게 부담이 돌아가야 할 몫이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로 사실상 세금부담의 증가로 일반 국민이 지게되는 구조가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11)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당시 공적자금 투입을 위해 발행한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가 발행한 채권을 구입할 수 있는 구매자들은 경제위기적 국면에서 해외투자자나 국내의 부유한 자산가 내지 대형 금융기관들이었으며, 해당 채권이 정부보증채였던데다가 당시 IMF가 요구한 긴축정책으로 인해 고이자율을 보장받는 채권이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공적자금의 조성을 통한 경제위기 극복의 과정 이면에서는 원인 제공자 내지 고액 자산가층과 일반 납세자들 간의 계층 간 격차를 더욱 심화시키는 재정적 계기가 내재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구조가 바로 국민의 정부 위기대응 과정에서 재정정책이 실제로 운영되는 과정에서 이질적인 계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우리 사회 경제 주체들에게 차등적 지원구조로 작용하여, 지난 고도성장기에 우리 사회에 체화되어 있던 지대추구적 비생산적인 축적행태를 온존·심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2) 기업구조조정과 재정정책 결합의 구조적 특성​


전술한 금융부문의 구조조정과 함께 정부는 다른 한편으로는 보다 직접적으로 기업구조개혁을 강하게 추진해나갔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그 동안 기업 내지 산업활동을 공적으로 규제 내지 촉진해왔던 법률을 IMF 경제위기 대처국면에서 새로운 발전방향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의지를 담아 수정·보완해 전부개정 내지 새로운 제정의 형태로 그 틀을 바꾸어 운용해나갔다. 그중 기업 내지 산업 전반에 영향을 주는 대표적인 것으로는 「조세특례제한법」과 「산업발전법」을 들 수 있다. 이제 이하에서는 이 두 법의 운용과정에서 내재되어 있는 지원정책의 구조적 특성을 규명해보고자 한다.​


먼저 정부는 구체적으로 기업구조개혁을 추진해나가기 위해 1998년 12월 28일 기존의 「조세감면법」을 「조세특례제한법」으로 전부개정(1999.1.1. 시행)하면서 보다 강력한 구조조정 지원책을 펼쳐나갔다. 새롭게 마련된 동 법은 큰 틀에서는 기존에 ‘기술인력개발’, ‘투자촉진’ 등 주요부문에 대한 지원조항은 그대로 유지시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거기에 더하여 당시 현안이 되고 있던 기업구조조정을 보다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었다.


이렇게 「조세특례제한법」으로 바꾸면서 구조조정 지원을 위해 새롭게 마련한 주요 내용을 보면, 대표적으로 2개 이상의 기업집단에 속하는 기업의 주식을 교환하여 기업을 양도·양수하는 경우 법인주주의 주식양도차익에 대하여는 법인세를 과세이연하도록 하고, 개인주주의 주식 양도차익에 대하여는 양도소득세의 50%를 감면하도록 하는 규정을 신설한 것을 들 수 있다(법 제46조). 뿐만 아니라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가 구조조정기업에 출자하여 취득한 주식을 양도함으로써 발생하는 양도차익과 구조조정기업으로부터 받는 배당소득에 대하여는 비과세하도록 하는 조항도 신설하였다(법 제55조). 이러한 규정들은 한편으로 기업의 구조조정을 지원하는 역할을 담아내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해당 기업에 세제상 특혜를 부여함으로써 그러한 구조조정의 계기를 불러왔던 기업에 오히려 특혜의존적 축적행태를 그대로 온존시켜주는 새로운 계기로 작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정부는 산업정책 지원의 목적을 담아 그때까지 적용해오던 「공업발전법」을 1999년 2월 8일 자로 폐지하고, 동일자로 「산업발전법」을 제정·시행(5월 9일)하면서 산업발전에 대한 국민의 정부의 새로운 정책 방향을 담아내고 있었다. 동 법의 ‘제정이유’에서는 「조세특례제한법」의 경우와 같이 “기업구조조정의 촉진”과 더불어 “우리 산업구조의 고도화를 촉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그 취지를 밝히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산업발전법」으로의 전환은 무엇보다 종전의 「공업발전법」이 ‘공업(제조업)’에만 적용대상을 한정했던 것과는 달리 “제조업과 ... 제조업외의 업종” 전반으로 적용대상을 넓히고 있으며, 더 중요하기로는 과거의 법은 정부가 “공업의 합리화를 촉진하기 위하여 대상 업종”을 지정할 수 있게 하였는데, 새 법에서는 ‘기술’이라든가 ‘생산성’ 등을 촉진한다는 차원에서 산업정책 대상 업종과 세부사항을 ‘기능별’로 규정하고, 이를 위한 정책적 지원에 있어서도 ‘인적 자원 개발’이라든가 ‘기술개발’ 등을 촉진하기 위하여 필요한 자금을 지원할 수 있게 하는 등 보다 포괄적으로 기능별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각 법의 관련 조항을 참고).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산업발전법」에서는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하여 기업이 영위하는 사업의 전문화를 유도하기 위한 시책을 수립”할 수 있게 하고(법 제10조), 이와 관련하여 사업전환을 위한 유휴설비 처리라든가 기술이전·고용승계 등 유휴경영자원 활용을 위한 사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게 함으로써(법 제13조), 산업구조재편과정에 정부가 보다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있었다. 실제로 1998년 중반부터 논의되기 시작되었던 대기업 간 사업교환, 소위 빅딜은 「산업발전법」이 제정되기 전 초기에는 금융압박수단이라든가 글로벌 기준 등에 의지하고 있었지만, 1999년 2월 8일 자로 동 법이 제정·운용되면서는 이러한 조치가 단순히 금융압박이라든가 글로벌 기준 등에만 의지한 것이 아니라 바로 동 법 제10조의 ‘사업전문화유도시책’ 수립 조항이 있어 공식적으로 법적인 근거를 확보하게 된 것으로 판단된다.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보다 효율적인 기업 내지 산업구조로의 재편을 추구하는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러한 과정에서 재정정책을 비롯한 정부 정책에 의한 개입과 특혜지원구조가 작동됨으로써 결국 지난날 정부 정책에 의한 기업 간 차등적 지원정책 틀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있다.12)


​(3) 부동산정책과 재정정책 결합의 구조적 특성


다음으로는 기업의 생산활동을 비롯한 우리 사회구성원들의 생활현장에서 주요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부동산 문제에 대한 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 내재해있는 구조적 특성을 규명해보고자 한다. 무릇 부동산의 보유 및 활용과 관련된 공적인 정책들 또한 공권력에 바탕을 둔 조세를 비롯한 재정활동에 의해 제약을 받으면서 행해지기 마련이라는 점에서, 이 문제에 대한 정책적 입장은 당시 행해졌던 재정정책의 구조적 특성을 규명해내는데 중요한 한 축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이러한 맥락에서 국민의 정부 시기 부동산정책과 재정정책 결합의 구조적 특성을 규명해보고자 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크게 1990년부터 시행되어 왔던 ‘토지공개념 3법’의 폐기에 이른 과정, 그리고 국민의 정부 토지문제에 대한 시장적 접근, 마지막으로 구조조정과정에서 토지에 대한 특혜수혜적 정책구조 등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토지초과이득세법」, 「택지소유상한제법」, 「개발이익환수법」 등 3개의 법으로 구성되어 있었던 토지공개념 관련법은 당시 치솟고 있던 부동산가격 안정과 더 근본적으로 1987년 민주화 과정에서 부동산의 투기적 이용을 억제하고자 하는 당시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여 도입되었던 제도였다. 그 중 「택지소유상한제법」은 위헌결정이 내려져 더 이상 적용되지 못하였지만, 「토지초과이득세법」은 부분적인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은 이후 이 법을 개정하여 시행하고 있던 것을 1998년 12월 28일 국민의 정부가 스스로 폐기하였다. 그리고 「개발이익환수법」은 위헌 또는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지 않은 유일한 법이었지만 몇 차례 법률을 개정하여 유보와 인하를 거듭하다가 2001년 12월 31일에 제정된 「부담금관리기본법」에 의해 2002년 비수도권을 시작으로 차츰 폐지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국민의 정부는 사회 민주화 과정에서 부동산의 투기적 이용을 억제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어렵게 만들어졌던 이들 법 중에 더 시행할 수 있었던 것까지도 폐지함으로써 토지공개념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 사회구성원들에게 토지의 보유와 활용에 관한 새로운 신호를 주어 후술하는 지가상승과 변동성을 키우는데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다음으로 국민의 정부의 국정과제 등에서 부동산 문제에 대한 정책적 입장을 제시하고 있었는데, 먼저 ‘국정과제’의 경우 대과제 19에서 “토지는 공급을 늘리고 이용도 편리하게” 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었으며(기획예산위원회, 1998, 42-43), 아울러 『「국민의 정부」 경제청사진』에서도 같은 맥락에서 “토지공급도 시장원리에 따라”(대한민국정부, 1998, 289-292)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구체적으로 “시장원리에 따라 수요가 있는 곳에 토지가 공급될 수 있도록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과 준농림지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을 발표하였다(같은 책, 293). 이러한 구상은 실제로 상당부분 실천에 옮겨졌던바, 먼저 1998년 4월 토지거래 허가제 대상 지역을 전면 해제하였으며, 동년 11월에는 신규주택 전매제한제도를 폐지하였다(한국은행, 『한국의 금융·경제연표 1945~2000』, 2000의 해당연도 자료 참고). 한편 1999년 1월에는 일정 크기 이상 모든 아파트에 대한 분양가 전면 자율화 조치를 취함으로써 20년 이상 시행되어온 정부의 분양가규제를 완전히 철폐하였다(윤정주·박성용, “분양가상한제 시장평가와 향후 과제,” 『건설정책저널』, 제36호, 대한건설정책연구원, 2020, 40). 아울러 1999년 7월 정부는 “개발제한구역 제도 개선안”을 발표했으며, 7개 중소도시권의 전면 해제와 7개 대도시권의 부분 조정을 진행하였다(권용우, 『그린벨트』, 박영사, 2024, 93). 이처럼 국민의 정부는 토지를 비롯한 부동산의 보유 및 활용과정에 시장원리를 기본기조로 삼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더하여 구조조정 정책을 수행해가는 과정에서 구조조정을 위한 다양한 세제상 혜택을 부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1998년 12월 28일 만들어진 「조세특례제한법」에서도 기업구조조정을 돕기 위해 합병이나 사업양도·양수 등을 통해 구조조정을 하는 경우 부동산 양도에 대한 양도소득세 또는 특별부가세의 50%를 감면해주게 하는 등(제42조) 구조조정과정에서 토지 구매 및 활용과 관련된 특례조항들이 다수 제시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마디로 국민의 정부는 부동산의 보유 및 활용과정에서 규제를 완화하고 시장 논리를 제고하였을 뿐 아니라 구조조정의 명분하에 특정한 조건하에서 상당한 특혜를 부여받을 수 있다는 정책적 신호까지 제공해주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국민의 정부 부동산 관련 정책은 우리 사회구성원들로 하여금 부동산을 생산과 삶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이윤추구의 대상으로 대하게 유도하였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고도성장기 이래로 우리 사회에 체화되어 왔던 지대추구적 비생산적 토지보유 및 활용 행태를 온존·심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7) 우리는 앞에서 사회보장 및 복지부문도 제도적으로 중요한 변화가 있었을뿐 아니라 세출에서 차지하는 상대적 비중도 크게 높아지는 등 재정영역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부문이기는 하나, 지면제약상 여기서는 더 이상 다루지 않기로 하였음을 참고하기 바란다.

8) 옥동석(『재정개혁의 목표와 과제』, 한국조세연구원, 2003, 50-51)도 재정운용의 실질적 제도개선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법률과 관련 규정들의 내용까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는 바, 본고와 같은 맥락이라 판단된다.9. 이와 같은 공적자금 관리체계상의 문제는 「공적자금관리특별법」 제정(2000.12.20.) 당시 재경부 보도자료 등을 분석한 황성현(“공적자금 문제의 평가와 상환대책,” 『공공경제』, 7(2), 2002, 284-288)의 설명을 참고할 수 있음.

9) 이와 같은 공적자금 관리체계상의 문제는 「공적자금관리특별법」 제정(2000.12.20.) 당시 재경부 보도자료 등을 분석한 황성현(“공적자금 문제의 평가와 상환대책,” 『공공경제』, 7(2), 2002, 284-288)의 설명을 참고할 수 있음.

10) 구조조정을 위해 정부보증채로 발행하여 마련한 공적자금 이외에 “정부가 재정으로 부담한 부분”은 세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채권을 발행해 빚으로 마련한 공적자금 외에 정부가 “시급한 구조조정을 위하여 불가피”하게 직접 예산을 비롯하여 공공자금으로 투입한 금액 20.9조원, 그리고 공적자금마련을 위해 발행한 채권에 대한 이자를 ‘재정융자특별회계’에서 무이자로 빌려준 금액 18조원(나중에 상환대책 마련할 때 이 이자분에 대한 상환의무를 면제해주었음), 마지막으로 공적자금 마련을 위해 발행한 정부보증채 중에서 회수되지 못한 부분으로서 국채를 발행하여 상환하기로 한 49조원 등이 그것이다(재정경제부, 『공적자금관리백서』, 2002; 재경부·기획예산처·금융감독위원회, “공적자금의 성과와 상환대책(안), 2002 등을 참고)

11) 동 “상환대책(안)”을 보면, 당시 정부 당국도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서도 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12) 뿐만 아니라 「산업발전법」에서는 기업구조조정 대상기업에 투자를 하거나 해당 기업을 인수하는 사업을 전업으로 영위하는 소위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를 만들어 구조조정대상기업을 매각하거나 매입하는 행위를 할 수 있게 하고 있는 바(동법 제3장), 해당 기업의 활동에는 정부로부터 다각적인 지원을 받도록 하는 등 다양한 특혜를 부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제도 역시 대규모 자본을 동원하여 이러한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를 운영해낼 수 있는 주체는 금융자본이나 대기업 계열 기업들이라는 점에서 구조조정 대상으로 불리한 조건에 처해 있던 부실 중소기업들의 매입을 통한 구조조정을 통해 차별적 특혜를 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서 작용하게 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3. 사회경제적 귀결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IMF 경제위기를 맞아 국민의 정부는 IMF 구제금융에 따른 경제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이행해가면서 또 한편으로는 경제위기 극복과 더불어 새롭게 전개될 경제 틀의 기초를 구축해내려는 의지를 담아 4대부문 개혁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나갔다. 그 과정에서 국민의 정부는 IMF가 요구한 프로그램뿐 아니라 국민의 정부 스스로도 정책 기조를 시장원리의 확충에 두고 실제로 구조조정 과정에서뿐 아니라 새로운 경제 질서 틀의 구축 차원에서도 친시장적이고 탈규제적인 정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구상하고 실천에 옮겨나갔다.13)


이와 같은 정책적 뒷받침에 힘입어 1998년 실질 경제성장률이 –5.7%라는 사상 유례를 보기 힘든 수준으로 추락하였던 것이 1999년 접어들면서 회복세로 접어들었다. 그 결과 1999년에는 당면한 위기국면을 극복하여 10.7%라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였다. 이러한 높은 성장률은 이전 해의 크게 낮아진 성과에 따른 기저효과가 작용하였던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이듬해 2000년에도 8.8%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었으며, 이어지는 2001년에는 4.0%로 다소 주춤하였으나, 2002년에는 다시 7.2%의 높은 성장성과를 보이고 있었다(<표 1>).


​그러나 이러한 총량적 성과지표의 개선만으로는 당시 우리 사회구성원들의 경제생활의 실태를 온전히 가늠해낼 수는 없다. 그것은 우리 사회구성원들이나 경제 제부문이 모두 동질적이지 않고 서로 다른 이질적인 계층이나 기업, 산업 등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당시 위와 같은 시장원리에 충실한 정책이 펼쳐졌던 경제현장은 지난날 고도성장기 오랜기간 실행되어 온 불균형성장정책으로 인해 그 과정에 자리잡은 특혜지향적인 축적방식으로 인해 사회 제 계층, 기업, 산업 등 사회 제 부문간에 불균등발전구조가 광범하게 자리잡고 있었다(지난 고도성장기 재정정책의 역사적 성격을 분석·게재한 『나라재정』 2024년 2월호, 6월호, 7월호 등의 우명동(2024)을 참고). 우리가 앞에서 분석한 내용의 핵심은 바로 그와 같은 사실로 인해 국민의 정부 시기 구상하고 수행해나간 시장원리에 바탕을 둔 제반 정책이 현실에서는 과거 명시적인 불균등정책 추진 시기에 자리 잡아 온 지대추구적인 비생산적 축적양식을 지양해내지 못하고 오히려 온존·심화시키는 또 하나의 계기를 주는데 기여해 왔다는 사실이었다.14) 이러한 사실은 결국 서로 다른 이질적인 계층, 기업과 산업으로 구성된 우리 사회경제실태에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는 더 많은 이윤과 편익을 추구하는 경제 논리상 자연스러운 현상인바, 현실에서도 그러한 사정은 그대로 반영되기 마련이었다.


이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하에서는 국민의 정부 시기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구조조정과 경기회복을 위해 취해진 주요 정책과 그를 위한 적극적인 재정정책 수행의 결과 실제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었던 사회경제의 구조적 실태를 규명해보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서로 다른 계층, 기업 및 산업으로 구성된 경제 제 부문 간 불균등발전구조의 측면과 그중에서 특히 재벌개혁과정에서 새롭게 불거진 기업 부실화의 측면, 그리고 나아가 기업의 생산활동과 주민들의 생활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토지가격의 상승 추이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1) 경제 제 부문간의 불균등발전구조의 심화


이러한 현상은 다양한 지표로 제시될 수 있지만, 대표적으로 산업별 성장률의 불균등하고 불안정한 발전 추이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IMF 경제위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던 1998년 경제성장률이 –5.7%의 음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을 때 농림어업부문 성장률은 -7.7%, 비농림어업부문 -5.6%, 그중에서도 특히 제조업부문 성장률은 –7.3%였었는데, 1999년 다시 경제가 회복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경제성장률이 10.7%로 올라갈 때, 농림어업부문은 5.1%로 회복되고 있었는데, 비농림어업부문은 11.0%, 그 중에서 특히 제조업부문은 23.0%로 큰 폭의 차이로 성장세를 달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한국은행, 『경제통계연보』, 2010, 11). 그 이후 다시 경제가 침체국면으로 접어든 이후로도 이러한 현상은 다소 기복은 있으나 추세적으로 유사한 격차를 보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의 이면에서는 구조조정과 경제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정책적 지원과정에서의 차등적 지원구조가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제조업 중에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는 다양한 측면에서 차이를 점점 더 넓혀가고 있었던바, 이러한 사실을 먼저 실질산출량(지수)을 노동투입량(지수)으로 나누어 계산한 ‘실질 노동생산성’의 변화추이를 통해 보면,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이 대기업의 그것에서 차지하는 상대적 비중이 1997년 33.0, 1998년 33.1이던 것이 차츰 더 떨어지고 있었으며 2002년에는 20.1로까지 낮아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음으로 기업의 경영성과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지표로 해당 기업의 평균유형 고정자산을 종업원 수로 나눈 ‘실질노동장비율’을 보면,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의 노동장비율이 차지하는 비중이 1997년 34.3, 1998년 29.5이던 것이 해마다 줄어들어 국민의 정부 마지막 해였던 2002년에는 23.7%를 차지하여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가 지속적으로 더 커져 갔던 것을 볼 수 있다(정연승·성백남·이원영, “대·중소기업간 생산성 및 임금격차에 관한 연구,” 기본연구, 04-94, 중소기업연구원, 2004, <부표 6>, <부표 8>, <부표 9>에서 추출계산). 이러한 사실은 전자의 경우 노동자의 숙련도라든가 자본축적 정도, 생산과정의 결합방식, 생산수단의 규모나 작업능력 등 노동생산성을 결정짓는 다양한 요인 면에서 대기업이 점점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해갔다는 것을 말해주며, 후자의 경우 자본집약적인 설비투자를 늘려갈 수 있는 능력이 중소기업에 비해 대기업이 상대적으로 점점 더 커져 갔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런 사실의 이면에는 지금까지 분석해온 바와 같이 경제위기와 그로 인한 구조조정과정에서도 대기업은 과거처럼 더 안정적인 경영여건에 의지하여 기업의 경영성과를 상대적으로 더 키워온데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 재벌개혁과 새로운 부실기업 문제의 등장


앞에서 기업구조조정과정에 내재되어 있는 정책운영의 구조적 특성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대기업의 사업 전문화를 유도하는 과정에서 대기업 간 사업교환, 소위 빅딜을 통해 사업전환을 유도하는 차원에서 각종 지원을 더해주는 구조를 택하고 있었던 것을 보았다. 외형상 기업들끼리의 자발적 사업교환의 형태를 띠는 경우에도 결국은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통해 부실을 털어내어 주력산업을 중심으로 보다 건전한 기업으로의 전환을 기도하는 것이었으며, 이를 위해 기존의 「공업발전법」을 폐지하고 「산업발전법」을 제정까지 하여 사업 전문화를 선도해가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이러한 지원정책이 해당 대기업들로 하여금 그 과정에 주어진 특혜에 의지해 오히려 과잉투자를 기도함으로써 결국은 다시금 부실로 이어지는 경향을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실제로 국민의 정부 출범 이전부터 재벌개혁에 관한 논의가 이어지다가 1998년 12월 7일 그간의 5대 재벌 간의 합의 내용을 담아서 청와대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1999년 중으로 ‘5대 그룹 빅딜(대규모 사업교환)’이 추진되었다.15)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정부의 구조조정 지원정책에 의지하여 투자를 늘리고 있었던 대우그룹이 1999년 몰락하였으며, 현대그룹 역시 무리한 대북투자와 중복투자 등의 여파로 계열사들이 대거 워크아웃되는 등 새로운 부실기업 문제로 귀결되었다.16) 이러한 현상은 지난날 고도성장기 불균형성장정책 운영과정에서 차등적 지원의 특혜를 바탕으로 과잉투자를 함으로써 결국 기업부실로 이어졌던 것과 같은 맥락의 현상으로서, 차등적 지원이라는 정책 기조가 결국은 기업들로 하여금 특혜에 의지하고자 하는 축적행태를 부추기게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3) 토지문제에 대한 시장적 접근으로의 회귀와 지가의 반등


당시 지가 추세를 보면, 지가가 1980년대 후반 ‘3저호황’기 이래 높은 상승률을 보이던 것이 1990년 전국평균 지가상승률 20.6%를 정점으로 급격히 하락하여 1993년 –7.4%까지 떨어진 이후 1994년 이래 줄곧 안정세를 보여왔다. 이러한 안정세는 1997년까지 전반적으로 이어지다가 1998년 경제위기 국면에서 –13.6%로 대폭 하락하였다가 이듬해부터 다소간 등락을 거듭하면서도 약간의 양의 증가율을 보이면서 안정세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국민의 정부 마지막 해였던 2002에 이르러서는 다시금 9.0%라는 큰 폭의 상승률을 보이고 있었다. 특히 그러는 가운데서도 변동 폭이 커서 불안정성을 나타내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다(장상환, “해방 후 한국 자본주의발전과 부동산투기,” 『역사비평』, 2004, 59의 <표 1>). 한편 이와 같은 변동 추이는 주택매매가라든가 아파트매매가 증가율에도 그 절대치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오르내림의 추이는 지가의 변동추이와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같은 논문, 67의 <표 2>).


​이러한 현상은 1990년에 출범하였던 토지공개념의 실시가 1990년대 말에 와서 폐기되거나 약화되는 시기, 그리고 국민 정부의 시장원리에 바탕을 둔 정책이 수행되었던 시기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우리는 다시금 당시 토지보유와 활용과 관련된 정책의 수행이 당시 경제주체들로 하여금 토지를 비롯한 부동산의 보유 및 활용에서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시장원리에 따라 움직인다는 인식을 갖게 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지가가 이렇게 반등세를 보이는 가운데 변동폭이 크면서 불안정성을 보이고 있었던 것은 토지의 보유 및 활용과정에 전술한 바와 같은 특혜추구적 계기가 작동되어 토지를 통한 투기적 이득을 추구하고자 하는 유인을 다시 부활시켰던 데 기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13) Wang and Zang(1998)은 ‘머리말’에서 당시 국민의 정부는 IMF가 요구하는 조건을 완전히 이행했을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더 빨리, 더 많은 구조개혁을 시행하였다고 평가하고 있는 것을 볼 수있는데, 이는 당시 국민의 정부의 정책관을 읽어내는데 참고가 될 수 있다고 판단된다.

14) 박종찬(“성장과 혁신의 질 향상을 위한 산업정책 방안 연구: 최종보고서,” 산업자원부, 2006, 66)도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불균형성장모델의 부정적 결과를 증폭시킨 것으로 해석하고 있어 본고와 궤를 같이하고 있음을 참고바람.

15) 빅딜이 처음 시도된 이후 1999년 11월까지 계획되고 추진된 내용에 대해서는 유승민(『재벌, 과연 위기의 주범인가: 위기 이후 재벌정책의 평가와 과제』, 비봉출판사, 2000, 115-118 <표 11> 및 157-172의 <부표 1> ‘재벌정책 일지’)을, 그리고 최종적인 빅딜추진 결과는 심지홍(“한국의 금융위기와 구조조정정책,” 『경상논총』, 27, 한독경상학회, 2003, 195-196)을 참고.

16) 대우그룹은 구조조정이 한창이던 1998년에도 쌍용자동차를 인수하고 대우중공업 이집트공장을 준공하는 등 사업확장을 멈추지 않았으며, 대우전자와 삼성자동차 빅딜협상도 실패하면서 결국 해체 과정에 들어갔다. 아울러 현대와 관련해서는 한나라당 김만제 의원이 2002년 2월23일 재정경제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현대상선은 대북사업의 부담으로 부실 가능성이 크게 때문에 대북사업 축소와 부실 계열사 지원중단, 강력한 자구노력이 요구된다”면서 현대 계열사의 워크아웃 지정을 요구했다(중앙일보, 2002.2.23. https://www.joongang.co.kr/article/754802)라는 기사 참고. 


종합적 평가와 시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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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구제금융으로 인한 위기적 국면에서 출범한 국민의 정부는 한편으로는 IMF의 요구조건을 이행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조기에 경제침체를 극복해내기 위해 긴축, 확장을 번갈아 가면서 재정정책을 운영해나갔음을 보았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정책수행 전 과정에서 국민의 정부의 기본철학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 기조 아래 시장원리에 바탕을 둔 정책이 광범하게 펼쳐지고 있었음을 보았다. 그러나 그러한 정책 기조와 그에 부응하는 정책들을 추진해나감에 있어서 지난날 고도성장기 이래 우리 사회에 폭넓게 자리 잡고 있으면서 계층 간 왜곡된 사회경제실태를 불러온 지대추구적인 비생산적 축적행태(양식)를 지양해내는 정책적 노력 없이 단순히 외형상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확립을 강조하면서 맹목적인 시장 우선의 개혁과 경제활성화 정책이 추진되었다.


​바로 이러한 사실로 인해 실제 경제현장에서는 오히려 과거 고도성장기에 명시적으로 취해졌던 차등적·선별적 지원방식과 유사하게 차등적인 지원구조가 작동되게 됨으로써, 오랜 기간 우리 기업의 축적행태와 일반 국민들의 경제(활동)행태에 체화되어 있던 지대추구적인 사회경제 틀을 지양해내지 못하고 오히려 온존·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IMF 경제위기 국면에서 출범한 국민의 정부는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해내고자 공공·금융·기업·노동부문 등 4대부문에 개혁적인 정책을 구상하고 집행해나가면서 적지 않은 성과를 이루어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경제발전과정에서 기존의 비생산적 기득세력과 그에 맞서는 대응세력 간의 지난한 갈등과 대립이 이어지게 함으로써 사회경제적 모순을 심화시켜가게 된 또 하나의 역사적 계기를 만들었던 시기로 평가된다. 이로써 결국 비생산적 경제운영 틀을 극복하기 위한 역사적 사명은 다시금 다음 시기로 넘겨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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