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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호] 재정정책의 역할과 그 역사적 연원의 중요성
제목 [2026년 9월호] 재정정책의 역할과 그 역사적 연원의 중요성
작성자 재정정보분석부 등록일 2026-09-23 조회수 8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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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정책의 역할과

그 역사적 연원의 중요성


우명동 성신여자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재정정책은 단순한 세입·세출의 조정을 넘어 사회경제구조와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정책수단이다. 이 글에서는 정부 수립 이후 주요 시기별 재정정책의 전개 과정을 살펴보고, 재정정책이 경제와 사회의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역사적 흐름 속에서 짚어본다. 과거의 재정정책이 오늘날 우리 사회경제의 구조를 어떻게 형성해왔는지 돌아보며, 현재와 미래의 재정정책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시사점을 찾아본다.



1. 재정정책의 중요성과 역사적 접근의 중요성


(1) 사회경제문제의 실태와 재정정책의 역할
 

우리 사회는 정부 수립 후 오랫동안 저개발국 내지 후진국이라 불리면서 사회 곳곳이 생존을 목전에 두고 고난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대한민국은 지난한 경제개발 계획기를 거쳐 고도성장정책을 추진해오는 과정에서 어느새 10대 경제 강국을 넘나드는 세계에 우뚝 솟은 국가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구성원들의 실제 삶의 현장에서는 OECD 국가 중에서 출생률 최저, 자살률 최고, 노인빈곤율 최고 수준을 보이고 있으며, 수도권 일극 중심 발전이 심화되면서 지역소멸 현상이 더욱 가팔라지고 있는 등 많은 사회경제지표에서 삶의 조건이 악화 일로를 걷고 있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이러한 양상은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계층 간, 기업 내지 산업 간, 그리고 지역 간 등 사회 제 부문 간의 불균등발전 구조가 심화되어 가면서 잉태된 현상들이라 할 수 있다. 무릇 어느 사회나 그 사회경제의 구조적 실태는 무엇보다 그 땅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업의 축적양식(행태)을 비롯하여 경제주체들의 경제생활양식(행태)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이하 ‘양식’, ‘행태’, ‘방식’ 등을 같은 의미로 혼용함).


그런데 한 사회 경제주체들의 경제생활양식을 규정짓는 기본적인 틀은 그 나라의 ‘경제체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주어진 경제체제 하에서도 그 구체적인 내용은 매 시기의 정권이 정책적 의지를 담아서 구사하는 제반 ‘경제정책’ 운영의 구조적 특성에 따라 달라지게 되어 있다. 결국, 현실에서 운영되는 각종 경제정책의 구조적 특성이 해당 시기 기업의 축적행태를 비롯한 경제주체들의 전반적인 경제생활행태에 영향을 줌으로써, 궁극적으로 해당 사회경제의 구조적 실태를 낳게 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본고는 그러한 제반 경제정책의 이면에는 해당 정책들이 특정 방향으로 작동될 수 있게 그 물적 기초를 제공해주는 ‘재정정책’ 면에서의 지원조치들이 뒷받침되고 있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중시하고 강조하고자 한다.


(2) 재정정책에 대한 인식과 역할

논의를 이어가기 위해, 이 단계에서 먼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Fiscal Policy’라는 개념을 돌아보면서 ‘재정정책’의 개념과 역할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두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케인스(J. M. Keynes)적  전통에서 만들어진 ‘fiscal policy’라는 개념은 총량적인 재정수지를 통해 한나라 전체의 총수요를 조절함으로써 경기를 안정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하는 정책을 일컬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 주위에 많은 전문가나 관료들은 ‘재정정책’을 이와 같은 ‘fiscal policy’로 인식하여, 재정정책 문제를 다룰 때 총수요조절을 위한 긴축 또는 확장 정책수행 여부에 초점을 맞추고 안정적인 재정수지 조절에 대부분의 관심을 기울이는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재정’이라는 것은 외형적으로는 이렇게 세출과 세입이라는 양적 지표로 나타나지만, 정부가 그러한 재정 활동을 수행하는 ‘근원적인 취지’라는 맥락에서 보면, 해당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에 부응하게 세출·세입 활동을 수행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민간인들의 물질적 삶의 상태를 개선하고자 하는 활동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재정정책’이라는 것은 단순하게 재정수지를 통해 총수요를 조절하는 양적인 개념을 넘어서, 구체적으로 세출과 세입 활동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축적양식을 비롯하여 해당 사회 경제주체들의 경제 활동양식에 영향을 주어(일정한 방향으로 선도하여) 궁극적으로 그들의 물질적 삶의 상태를 개선하고자 하는 정부의 적극적 정책으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재정정책 문제를 다루는 연구자나 정치가, 관료들로서는 단순히 총량적인 재정수지 변화추이나 그 속에 담겨있는 양적인 재정안정성 문제 자체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그러한 재정정책 운영을 통해 기업을 비롯한 경제주체들의 경제 활동양식에 어떠한 작용을 가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사회경제의 구조적 실태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나아가 사회구성원들의 물질적 삶의 질을 개선시키는데 얼마나 기여하는지에 관심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할 수 있다. 


(3) 재정과 사회의 상호유기적 관련성에 대한 인식과 역사적 접근의 중요성


지금까지는 재정정책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느라 재정정책이 해당 사회구성원들의 경제실태에 주는 영향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하였다. 그러나 사실 재정이라는 것은 거꾸로 해당 사회경제실태에 의해 영향을 받아 재정의 규모 내지 재정정책의 내용이 제약을 받는 측면도 있다. 말하자면 재정정책과 사회경제실태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유기적 상호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서는 일찍이 J. A. Schumpeter는 “재정은 사회문제 탐구를 위한 가장 중요한 출발점 중의 하나이다”라면서, “그것은 재정정책은 (재정 현상은 모든 변화의 원인 중에서 중요한 하나의 요인이 이라는 점에서) 원인적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질 뿐 아니라,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재정 현상에 반영되게 된다는 점에서) 징후적 차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에, 재정정책을 통해 사회문제를 파악하고자 하는 시도는 충분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설파한 적이 있다. 한편 초기 재정사회학의 대가로 알려져있는 R. Goldscheid도 “재정활동의 형태(구조)는 나라와 사회의 발전에 언제나 결정적인 영향을 끼쳐왔다. 조세투쟁은 계급투쟁의 가장 오래된 형태이며, 재정행위는 격심한 정신적인 변혁의 시기에서조차 사회문제의 향방을 결정하는데 기여하는 주요한 원인을 제공해왔다”고 하고 있는 바, 이 또한 재정과 사회와의 관계에 대해 앞의 Schumpeter과 같은 맥락의 인식을 전해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재정정책과 사회경제실태는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관계에 놓여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특정 시기 재정정책이 다양한 정책수단을 구사해가면서 바꾸고자 하는 문제가 되는 당면한 사회경제실태라는 것은, 그 자체가 과거 정부 재정정책운영의 구조적 특성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이라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렇게 보면, 특정 시기 재정정책을 구상해감에 있어서는 과거 정부의 재정정책이 당시 사회경제구조를 어떻게 인식하고 구체적인 정책수단을 어떻게 구상하고 실행하였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긴요하다 할 것이다. 그래야 현재 정부가 지양하고자 하는 현 단계 사회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개혁해내기 위한 대안을 현재 재정정책의 구상에 제대로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이 바로 재정정책의 수립과 운영문제를 다루는 연구자를 비롯하여 정치가나 관료가 재정정책의 역사적 흐름(인과관계)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라 하겠다. 


이런 맥락에서 필자는 오늘날 우리 사회경제실태를 규정지은 경제주체들의 경제 활동행태를 결정지은 역사적 경로를 파악해내기 위해, 지난 수년간 한국재정정보원에서 발간하는 『나라재정』을 통해 정부 수립 이후 주요 국면마다 각 시기 정권이 구상하고 추진해왔던 주요 정책과 그 정책수행에 물적 기초를 제공해주었던 재정정책운영의 구조적 특성을 규명해내는 작업을 이어왔다. 이하에서는 그간에 게재된 내용을 개괄적으로 소개함으로써, 관심 있는 전문가를 비롯하여 재정 관련 공무 담당자들이나 일반 독자들에게 참고자료 제공의 기회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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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부 수립 이후 전개된 재정정책운영의 구조적 특성과 역사적 의의


(1) 1957년 「재정안정계획」의 출범·중단·부활과정에서 보인 재정정책 운영의 구조적 특성

1) ‘계획’ 출범 시기


정부 수립 후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와 미군정 시기의 유제로 물려받은 불안정한 경제 상황, 6·25전쟁 수행과 그 복구과정이라는 비상적인 상황에서 원조물자에 의지하여 재정·금융을 운영해나가면서 물가안정에 초점을 두고 나라 경제를 관리해나가는 데 급급했다. 그러던 중 1957년 미국의 대외원조정책이 무상원조에서 유상원조로 바뀌는 상황에 접하여 원조국이었던 미국의 요구에 의해 긴축 위주의 재정정책을 비롯한 경제정책 수립의 기준틀 구실을 하는 소위 「1957년 재정안정계획(이하 ‘계획’)」이 수립·출범하게 되었다.


이러한 ‘계획’은 이후 이어지는 연도들의 재정정책 운영의 준거 틀의 구실을 해나갔던바, 이 ‘계획’은 통화증발에 영향을 미치는 재정·금융·외환 등 모든 부문을 대상으로 통화량 증가요인을 종합적으로 통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이 시기 재정활동은 ‘계획’에 의해 엄격하게 규제되면서 긴축기조로 운영해나갔다. 이 시기 재정운영의 성과를 평가함에 있어서는 많은 경우 동 ‘계획’이 당시의 통화량 조절 내지 물가안정, 그를 위한 재정수지 균형이라는 현상적으로 양적인 안정을 달성하는데 기여한 성과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재정정책의 본질은 그를 통해 당시 사회구성원들의 삶의 실태를 개선시키는데 그 뜻이 있다는 점에 비추어보면, 총량적인 재정적 성과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군사비, 사회안정비는 지속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데 비해, 당시 전재복구 이후 새로운 경제발전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필요한 사회기반시설 관련 경비는 낮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었다. 그 결과 결국 우리 사회의 경제적 기반은 더욱 취약해지게 됨으로써 결국 총량적인 경제적 성과도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결과를 낳고 있었다.


2) ‘계획’ 중단 시기


이렇게 1957년에 시작되어 당시 우리나라 재정정책의 기본 틀을 제약해왔던 미국 주도의 ‘계획’ 체제는 출범 이후 1960년까지 이어져 오다가 4·19혁명 이후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국 주도의 엄격한 긴축정책을 중단시키고 혁명의 가치를 담아내려는 의지를 갖고 ‘경제제1주의’를 기치로 확장정책을 시도해나갔다. 그러나 민주당 정부는 제대로 정책을 펼쳐보기도 전에 5·16군사정변으로 군사정부가 들어서게 되었던바, 군사정부에서도 같은 취지에서 미국주도의 ‘계획’에 의한 긴축정책의 적용을 거부하고 마찬가지로 ‘경제제1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확장정책기조를 채택하였다. 


이러한 정책 기조하에 군사정부는 1961년에 이어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이하 ‘제1차 5개년계획’)’의 제1차연도인 1962년에도 적극적인 확장재정정책을 펼쳐나가면서 경제적 기반구축을 위한 재정투융자지출을 늘려나갔다. 그러나 ‘계획’이 중단된 상태에서 당시 일반재정 세입에서 조세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30~40%밖에 안 되던 상황에서 확장정책을 추진해나감에 따라 재정수지 적자 폭이 커지고, 그에 따라 국채발행과 차입금을 늘리고 통화공급을 늘리면서 물가가 급상승하는 등 각종 사회경제적 문제가 늘어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3) ‘계획’ 부활 시기


이에 당시 군사정부는 서둘러 미국과 협의를 거쳐 1963년에 다시 ‘계획’ 체제를 수용하고(부활시키고) 미국 주도의 엄격한 긴축정책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하여 1963년부터 다시금 원조를 받아가면서 ‘제1차 5개년계획’의 목표를 완화한 수정안을 만들어 추진해나갔다.

이렇게 다시 긴축정책 기조를 수용함에 따라 다시금 재정 규모가 크게 줄어들고 이듬해에도 미세한 증가에 머무르게 되었으며, 수입 면에서도 1964년에는 국채발행과 차입금이 없어진 대신에 원조로 인한 대충자금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었다. 결국, 재정수지는 다시 흑자 내지 균형상태를 보이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렇게 재정지출 규모가 축소되는 과정에서 투융자 부문의 지출은 큰 폭으로 줄어들어 경제적 기반구축과는 점점 멀어지는 상황을 보였다.

이와 같은 ‘계획’의 출범과 중단, 그리고 부활의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재정운영의 성격을 돌아보면, 한편으로는 한 나라의 재정정책 수립과 집행을 위해서 국가가 대외적으로 정책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정책적 의지를 갖고 자율권을 행사하는 경우에는 무엇보다 당시 주어진 사회경제적 기반에 상응하는 수준에서 정책이 구사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 시기의 재정운영과정을 돌아보면서 우리는 어느 경우에도 재정정책 수행에서는 단순한 양적인 재정수지상의 안정보다 정책수행의 대상인 ‘현실’로부터 제기되는 보다 근본적인 사회경제적 실태를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역사적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2) ‘경제개발 5개년계획’ 추진 시기에 보인  재정정책 운영의 구조적 특성

1) 제1차 5개년계획 추진 시기


전술한 바와 같이 5·16군사정변 후 군사정부는 혁명적 가치를 담아내려는 의지를 갖고 의욕적으로 ‘제1차 5개년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해나가고자 하였다.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계획’의 제약을 무시하고 추진한 1차연도의 성과가 의도된 대로 나오지 않자, 1963년 미국과 협상을 통해 다시 ‘계획’ 체제를 수용하면서 긴축 기조하에서 ‘제1차 5개년계획’을 애초보다 목표를 완화한 수정안에 따라 추진해나갔다.


그러던 중 1965년 월남전 참전을 계기로 미국과의 관계가 재정립되면서 동 ‘계획’이 ‘완화’되었다. 이에 따라 긴축재정에 대한 제약이 크게 완화되면서, 군사정부는 정책수행을 위한 ‘대외적 자율성’을 확보한 상태에서 정부의 정책적 의지를 반영하여 다시금 확장정책을 펼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내용적으로는 수정된 ‘제1차 5개년계획’에 따라 본격적으로 정부 주도적인 대외의존적·수출주도적인 ‘불균형성장정책’을 추진해나갔다. 이 시기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으로 원조도 계속 들어오고 수출시장도 확보되면서 국내적으로도 자율적인 자원 동원능력도 커지고 있었다. 이로 인해 1965년, 1966년 재정 규모를 증가시켜갔으며, 그 재원으로 1965년에는 미국으로부터의 원조자금에 의지한 바 컸으나 1966년에는 그 수준이 크게 떨어졌지만, 그로 인한 부족한 재원을 조세 증징과 외자도입 등으로 메워가면서 확장정책을 펼쳐나갔다. 그러면서 계획에 의한 제약으로 늘리지 못했던 산업시설 확충을 위한 재정투융자 비중을 높여가면서 1965년과 1966년에는 높은 성장률을 달성하였다.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대외의존적·수출주도적인 성장정책을 추진해갔던바, 이와 같이 정부가 의도하는바 대외의존적·수출주도적 성장정책 추진을 위해 부족한 국내외 자원을 모으고 배분하는 과정에서 선택과 집중 전략을 택하였으며, 구체적으로 특정 산업을 중요산업 내지 전략산업의 대상으로 선택하고, 관련 개인 내지 기업에 차등적·선별적인 재정지원책을 구사하면서 불균형성장정책을 운영해나갔다. 이는 재정정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금융부문을 비롯한 정책 일반에 적용되는 지원방식이었다.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수출주도적인 성장정책 추진을 위해 다양한 조세감면 등 차별적인 재정지원책이 실시되었던바, 금융부문에서도 부족한 내자조달을 위해 다양한 조치를 강구해가던 중 특히 1965년 9월에는 이자율 현실화 조치를 취하여 사실상 ‘역금리’로 조달된 재원으로 불균형적인 성장지원책을 구사해나가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불균형성장정책은 차등적·선별적인 지원정책으로 구체화되어 당시 기업들로 하여금 차등적인 특혜에 의지해 기업활동을 수행하고자 하는 지대추구적인 비생산적 축적양식을 배태시킴으로써, 우리 사회에 불균등발전구조를 촉발시키는 계기를 만들어나갔던 것이다. 이와 같은 지대추구적인 비생산적 축적양식은 후일 과잉투자·부실투자라는 우리 경제의 고질적인 문제를 배태시키는 역사적 계기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2) 제2차 5개년계획 이후 시기


전술한 바와 같이 ‘제1차 5개년계획’ 마지막 1965, 1966년에 전례 없는 높은 성장성과를 보이면서, 군사정부는 ‘제2차 5개년계획기’에 들어 기존의 정부 주도 정책 노선을 더욱 심화시켜나갔다. 그러던 중 그간의 성장성과에 힘입어 1969년 하반기에 기존의 미국 원조 당국과 협의해서 그동안 운영해오던 「계획」 체제를 마무리 짓고 국제기구인 IMF와 협의에 의해 재정금융정책을 수행해나가면서, 1970년 이래로는 우리 정부는 재정금융정책 면에서 온전히 대외적 자율성을 갖고 정부의 정책적 의지에 따라 재정금융정책을 펼쳐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대외적인 정책적 자율성을 확보한 군사정부는 1972년 10월 유신을 통해 보다 집권적이고 강력한 지배체제를 통해 기존의 대외의존적·수출주도적 불균형성장정책을 보다 적극적이고 차등적·선별적으로 추진해나갔다. 이러한 정책 기조하에서 1972년 시작된 ‘제3차 5개년계획’은 1973년 제1차 석유파동을 맞아 잠시 주춤하였으나, 당시 우리나라가 경공업 중심의 저에너지 의존형 경제구조였다는 점과 석유파동 이후의 중동 붐을 계기로 조속하게 회복세를 타는 가운데, 확장적 재정정책의 지원을 받아가면서 1973년 이래로 중화학공업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갔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불균형성장정책 기조를 더욱 강화해나갔으며, 이러한 정책 기조는 ‘제4차 5개년계획’ 시기에도 그대로 이어져 1970년대 말까지 기본 틀을 유지해나갔다. 

이렇게 1965년 이래로 본격적으로 대외의존적·수출주도적 불균형성장정책이 추진되면서 전술한 바와 같이 구체적으로 불균형성장을 위해 구사된 차등적·선별적인 지원정책에 의해 차등적인 특혜에 의지해 기업활동을 수행하고자 하는 ‘지대추구적인 비생산적 축적양식’이 배태되어가는 조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결과 구체적으로 1969년이 되면서 기업의 과잉투자로 인한 부실기업 문제가 현실적으로 노정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부실기업 문제에 직면한 군사정부는 그러한 문제의 원인에 대한 대응을 구상해내는 방안을 강구한 것이 아니라, 1972년 경제적으로는 ‘8·3조치’, 정치적으로는 ‘10월 유신’을 통해 강압적인 방법으로 대처해나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마저도 다양한 경제정책과 그를 지원하기 위한 재정정책을 운영함에 있어서 지난시기 과잉투자를 일으켰던 차등적·선별적 지원정책을 지속적으로 적용해가면서 대처해나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제3차, 제4차 5개년계획기에 중화학공업정책을 추진해나가는 과정에서도 「조세감면규제법」을 통해 특정 산업에 대해 다양한 감면조치를 취한다든가, 「국민투자기금법」을 제정하여 다양한 재원으로 기금을 조성하여 중요산업에 집중적으로 융자를 해주었을 뿐 아니라, 정책적 대응이 필요할 때마다 다양한 ‘안정화’ 조치들을 취해가면서 같은 맥락의 차등적 지원정책을 더욱 적극적으로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이러한 차등적·선별적 지원정책에 기대어 지대적 편익을 추구하는 기업들의 과잉투자, 부실투자 문제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계층 간, 그리고 기업을 비롯한 제 부문 간 불균등발전구조가 5개년계획의 차수를 더해가면서 더욱 구조화되어가는 양상을 보여왔다. 그러는 가운데 1978년 말 불어닥친 제2차 석유파동과 이로 인한 세계적 불황이라는 축적의 대외적 조건의 변화를 계기로 그간에 누적되어 우리 사회 제 부문 간 불균등발전의 구조적 모순이 폭발되면서, 1978, 1979년 치명적인 경제침체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때마침 발생한 1979년 10월의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이라는 정치적 격변이 겹치면서 우리 사회는 그간에 누적되어 왔던 내적 모순이 폭발하면서 정치체제의 변화와 함께 경제발전 전략에 새로운 대응이 요구되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3) ‘3저호황 전·후’ 시기 재정정책운영의 구조적 특성

1980년대 신군부 정권에서는 그들이 직면한 침체적 경제 상황이 지난날 고도성장기의 ‘정부 주도’ 성장정책에서 기인하였다는 인식 위에 ‘민간주도’ 내지 ‘시장중시’, 그리고 그에 상응하게 지난날의 ‘차등적·선별적 지원’ 대신에 ‘기능별 지원’ 정책으로 방향을 바꾸어나갔다. 그리고 재정정책 면에서도 그러한 정책 일반의 기조에 부응하여 확장정책 대신에 긴축정책 기조를 택하면서, 이를 위해 중기재정계획제도 도입, 영기준 예산편성방식 채택, 공기업 민영화 등 재정효율성 제고를 위한 다양한 개혁을 추진해갔다. 그러나 그러한 정책전환은 1970년대 고도성장기 이래로 기득권화되어 있던 불균등 사회경제구조를 지양해내는 조치들이 결여된 상태에서 취해짐으로써 궁극적으로 실제 경제현장에서는 기존의 기득질서를 더욱 공고히 하는데 기여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던 가운데, 1986~1988년 소위 ‘3저 현상’이라는 우리 역사상 보기 드문 대외적 호조건에 힘입어 수출이 늘고 생산과 소득이 늘어나는 특수한 국면을 맞이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당시 정부는 지난날 고도성장과정에서 우리 사회에 체화되어 있던 사회 전반의 불균등발전구조 전환을 위한 정책 틀을 모색하기보다는 수출 호조에 따른 통화증발요인 흡수차원에서 재정 긴축정책을 이어가면서 지난날의 성장정책을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경제현장에서는 차등적·선별적 지원정책이 그대로 이어짐으로써 지난날 자리잡은 특혜를 좇는 비생산적 축적행태는 그대로 온존되어 심화되어가고 있었다. 이로 인해 여전히 그러한 특혜의존적 경제생활행태가 불러온 토지투기에서 비롯된 지가상승, 부실기업의 문제는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3저 호황’을 거치면서 전반적으로 경제 규모가 커지고 국민들의 소득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사회 각 계층들로부터 다양한 공적 내지 사회적 요구가 분출되면서 1987년 사회민주화운동이 고조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제6공화국이 출범하기 이르렀다. 이와 같이 제6공화국의 문을 연 노태우정부는 민주화열기 속에서 지대추구적 경제구조 지양을 위한 사회적 열망을 수용하여 ‘종합토지세’와 ‘토지공개념’ 제도 등 개혁적 정책을 도입·운영해 나가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의지는 ‘3저호황’ 소멸 이후 경제침체국면 극복을 명분으로 성장정책으로 회귀하면서 재정정책면에서도 다시금 확장정책으로의 기조전환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정책기조의 전환으로 개혁조치들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궁극적으로 지난 고도성장기에 자리잡아온 우리사회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이 더욱 깊어지게 되었으며, 결국 왜곡된 역사적 유제청산의 과제는 이어 들어선 문민정부로 넘어가게 되었다.


(4) IMF경제위기 전·후 시기 재정정책운영의  구조적 특성

1) ‘신경제5개년계획’ 추진 시기 재정정책운영의 구조적 특성


이러한 국면에서 등장한 문민정부는 당시 우리 사회가 직면한 제 문제의 원인을 과거 “정부의 지시와 통제에 의한 경제 운용”에서 찾고, “모든 국민의 참여와 창의를 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 하는 새로운 한국경제”를 「신경제」로 정의하고, 이러한 신경제를 통해 ‘신한국’을 건설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신경제5개년계획」을 수립하여 시행해나갔다. 이러한 「계획」하에 문민정부는 한편으로는 대내적으로 ‘금융실명제’를 비롯한 주요 개혁조치들과 더불어 규제 완화와 자유화 조치들을 취해나갔으며, 대외적으로도 이러한 대내적인 자유화 조치에 상응하게 금융, 외환, 무역 등의 자유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세계화 내지 국제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나갔다. 아울러 재정정책 면에서도 이와 같은 「신경제5개년계획」 추진을 위한 물적 기초 제공역할을 수행하는 차원에서 재정 능력 확충과 재정제도 효율화를 위한 다양한 개혁조치를 추진하였다. 다양한 제도개혁이 있었지만, 대표적으로 당시 연기금 등이 활용하고 있던 자금을 통폐합하여 ‘공공자금관리기금’을 신설·운영한 사실과 기존에 운영하고 있던 석유사업기금 등 5개 기금을 통합하여 ‘에너지 및 자원사업 특별회계’를 설치·운영한 사실을 들 수 있는바, 이러한 조치들은 자유화와 국제화 취지에 부응하는 각종 사업을 위한 재정투융자 재원확보를 위해 취해진 조치로서 문민정부 재정운영의 사회경제적 성과에 큰 영향을 끼친 제도변화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개혁적인 조치들이 실제 운영되는 과정에서는 원래 제도개혁의 취지를 훼손하는 내용이 내포되어 있었다. 먼저 금융실명제와 그에 따른 금융소득종합과세제도를 실시하였지만, 구체적인 운영과정에서는 제도도입 초기의 충격을 완화한다는 명분으로 고액 예금자로 하여금 고소득층의 기득권을 이어가게 함으로써 기존의 차등적·선별적 지원 정책적 특성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다. 더 중요하게는 공공자금관리기금 운영에서는 연기금 등의 여유자금을 모아 이를 ‘재정투융자특별회계’에 예탁하여 정부가 선정한 전략산업 내지 사회간접자본 등에 저리로 자금을 공급하는 통로로 활용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대기업에 대한 차등적이고 선별적인 지원도구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에너지 및 자원사업 특별회계’도 같은 맥락에서 관련 사업을 수행하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간의 차별적 성장을 유발하는 제도적 장치로 작용하고 있었다. 아울러 문민정부는 금융자유화 내지 선진화 정책의 일환으로 단자회사의 ‘종합금융회사’로의 전환를 추진해나갔던 바, 이 과정에 종금사에 주어진 금융상의 특혜는 조세감면 및 정책자금지출 등 재정정책수단과 맞물러 재벌위주의 과잉투자구조를 심화시키는 결정적 작용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마디로, 「신경제 5개년계획」의 구상에 따라 시행된 각종 규제완화 내지 시장자유화, 세계화조치들은 사실상 경제주체들에게는 지난날의 차등적·선별적 지원정책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였다. 그리하여 당시 기업들, 특히 대기업들의 축적행태를 더욱 특혜의존적으로 왜곡시킴으로써 과잉투자로 인한 부실기업을 양산하는데 정책적으로 기여하게 되었으며, 급기야 1997년 들어 IMF 구제금융사태를 불러오기에 이르렀다.

 

2) ‘IMF 경제위기 대응’ 시기 재정정책운영의 구조적 특성


IMF 경제위기 상태를 물려받은 국민의 정부는 우리 사회가 물려받아 지양해야 할 유제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미확립”으로 인식하고, 이를 지양해내기 위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병행발전”을 국민의 정부 기본철학으로 설정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철학을 구현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경제적 자유와 엄격한 자기 책임, 시장경쟁을 통한 보상, 균등한 기회의 보장, 내외국인을 차별하지 않는 시장개방을 기본원칙으로 공공부문·금융·기업·노동 둥 4개 분야의 구조개혁을 본격적으로 추진해나갔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IMF가 구제금융을 지원해주면서 우리정부에게 제시한 경제프로그램의 이행 의무가 담겨 있었는데, 위와 같은 구조개혁을 물적으로 지원해주는 역할을 하는 재정정책에서는 무엇보다 금융부문의 고이자율정책과 더불어 균형재정달성을 위한 긴축재정정책 이행 요구가 제시되고 있었다. 이러한 요구에 직면한 당시 국민의 정부는 IMF의 요구를 적극수용하여 긴축적인 재정정책기조와 그에 부응하는 제도개혁을 추진해나갔다. 대표적인 제도개혁으로는 무엇보다 대형 공공투자사업의 효율적 수행을 위한 ‘예비타당성제도’를 도입운영하였으며, 「기금관리기본법」을 제·개정하여 기금도 예산과 마찬가지로 국회의 심의·의결을 받도록 하고 불필요하거나 불합리한 기금을 통폐합하는 등 재정운영의 효율성을 증가시키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면서 전술한 4대부문 개혁을 뒷받침해나갔다. 

그런데 집권 초기 IMF의 요구에 부응한 긴축재정 수행과 더불어 강력하게 추진되었던 구조조정의 여파로 실업이 증가하고 성장세가 위축되면서 오히려 재정수지 적자 규모가 커지는 양상을 보였다. 이에 국민의 정부는 IMF와 재협상을 통해 적자재정 운영을 요구하고 IMF가 이 요구를 수용하여 적자재정운영이 가능해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1999년부터 보다 적극적인 확장적 재정정책을 운영하면서 위기의 원인으로 지적된 4대 부문의 개혁을 통해 구조조정을 본격적으로 추진해나갈 수 있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먼저 기업구조조정을 위한 금융부문 구조조정을 위해 재정정책적 지원을 받아가면서 ‘공적자금’을 만들어 운영하였던 바, 구체적인 운영과정에서는 금융기관뿐 아니라 최종적인 지원의 수혜자였던 부실기업으로 하여금 지원의존적인 구제메커니즘에 의지하게 하고 있었다. 아울러 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구조조정을 위해 기존의 「조세감면법」을 「조세특례제한법」으로, 그리고 「공업발전법」을 「산업발전법」으로 바꾸어가면서 다양한 정책적 지원을 해나갔던 바, 이 경우에도 해당 기업에 세제상 특혜를 비롯하여 다양한 정책적 지원을 해줌으로써 결국 지난날 정부 정책에 의한 기업 간 차등적 지원구조가 그대로 이어지는 계기가 작동되고 있었다. 

요컨대, IMF경제위기 대응을 위한 구조조정과정에서 지난날 고도성장기 이래 우리사회에 폭넓게 자리잡고 있었던 지대추구적인 비생산적 축적행태를 지양해내는 수단을 담아내지 않은 채 단순히 외형상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확립을 강조하면서 맹목적인 시장우선의 개혁과 경제활성화정책이 추진되었다. 이로 인해 실제 경제현장에서는 오히려 과거 고도성장기에 명시적으로 취해졌던 차등적·선별적 지원방식과 유사한 지원구조가 작동되게 됨으로써, 오랜 기간 우리기업의 축적행태를 비롯한 경제활동행태에 체화되어 있던 지대추구적인 사회경제틀을 지양해내지 못한체 그 과제는 다시금 후대 정부로 넘어가기에 이르렀다.


(5) ‘국가운영 틀 전환 시도’ 시기 재정정책운영의 구조적 특성

참여정부는 집권 당시 직면한 사회 제 부문 간의 불균등발전구조의 원인을 과거 정부의 ‘중앙집권적 불균형국가’ 운영 틀에서 찾고 이를 지양해내기 위한 새로운 국가운영의 틀을 ‘지방분권적 균형국가’로 설정하고, 이에 부응하기 위한 구체적인 국정과제를 제시하고 추진해나갔다. 그리고 재정정책에서도 그와 같은 새로운 국가운영틀의 구축을 위한 물적 기초를 제공할 수 있게 ‘분권형 국가재정’ 실현을 목표로 소위 ‘재정·세제개혁 로드맵’을 제시하고, 이 로드맵에 따라 다양한 제도개혁을 추진하였다. 대표적으로 참여정부는 재정운용에 대한 예측가능성과 재정건전성 확보 등을 위해 계획과 예산을 통합한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수립·운용하였으며, 기존의 상향식 예산편성이 갖는 비효율성을 해소하기 위해 ‘총액배분-자율편성(Top-Down) 방식’을 채택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전체적으로 효율적인 예산운용의 성과를 보이고 있었다. 이러한 제도적 기반위에 국정과제의 이행이라는 차원에서, 먼저 균형발전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행복도시·혁신도시·기업도시 건설을 통해 지역의 인적·물적 자원과의 유기적 연결고리를 강화하여 지역주도의 역동적 지역발전을 이루어내기 위해 ‘지역혁신체계’ 구축을 위한 각종 재정적 지원책을 구상하고 시행해나갔다. 다른 한편, 분권적 국가발전을 위한 재정적 지원을 위해 ‘지방교부세’의 법정률을 세 차례나 인상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기존의 국고보조사업을 지방으로 이양하면서 지방으로 하여금 자율적으로 해당 사업을 시행하게 하기 위해 ‘분권교부세’제도를 신설하는 등 지방의 재정적 자율성을 제고시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경주해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으로 정책들을 구상하고 수행해나감에 있어서, 해당 정책들이 수행되는 경제현장의 경제주체들로 하여금 지난 고도성장기 이래로 오랜 기간 우리 사회에 체화되어 있던 지대추구적인 비생산적 축적행태를 지양해내게 하는 구체적인 대응책을 담아내지 못했다. 그리하여 참여정부는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유례를 볼 수 없이 국가운영 틀의 새로운 개조를 비전으로 제시하고 의욕적으로 다양한 개혁정책을 구상하고 상당 부분 실행해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정책적 측면에서는 지역 주도의 역동적 지역발전의 계기를 만들어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 이면에 사회구성원들의 실제 생활현장에서는 지역간, 그리고 사회 제 계층과 부문 간의 불균등구조를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새로운 국가운영 틀을 구축하고자 하였던 애초의 정책적 의지는 무위로 돌아간 채, 다시금 ‘활기찬 시장경제’를 주요 국정지표로 내세우고 경세성장을 최우선동력으로 인식한 차기정부에 정권을 넘겨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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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재정사 연구의 중요성과 시사점

 

무릇 특정 시기 재정정책은 해당 시기의 주어진 사회경제구조(실태)를 더 나은 상태로 바꾸고자 하는 당시 정부의 정책적 의지를 반영하여 구상되고 실행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그 시기의 사회경제구조라는 것은 과거 정부의 재정정책운영의 구조적 특성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아 자리 잡게 된 역사적 산물이라는 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현재의 사회경제구조를 더 나은 상태로 바꾸기 위한 재정정책을 구상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현상’ 그 자체가 아니라, 과거 정부의 재정정책이 당시 기업의 축적양식을 비롯하여 경제주체들의 경제생활양식(행태)에 준 정책운영의 구조적 특성을 규명해서 그것을 지양해낼 수 있는 정책수단을 담아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기업의 축적양식을 비롯한 사회구성원들의 경제생활양식이 해당 사회경제의 구조적 실태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런데 이와 같이 부정적인 사회경제구조를 개선시킬 수 있는 재정정책 운영 틀을 구상해내는 것은 일차적으로 정치가나 관료들에게 주어진 과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득권화되어 있는 특정 시기 기업의 축적양식을 비롯한 경제주체들의 경제생활양식을 바꾸어내는 정책 틀을 만들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가나 관료들이 기득질서를 제대로 파악해내지 못하거나, 그들의 의지가 기득질서를 바꾸는 데 있지 않을 수도 있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그들에게 그러한 의지가 있더라도 기득질서에 의한 직간접적인 저항으로 기존의 축적 틀을 지양해내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결국, 정치가나 관료들의 정책적 의지나 노력이 경제현장의 실태를 담아내고 현장에 스며들 수 있는 정책대안을 만들 수 있게 하는 보다 근원적인 힘이 필요하다. 지난날의 역사는 그 힘은 아래로부터의 구성원들의 사회적 요구와 의지의 고양에서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가 재정 제도나 재정정책의 역사적 흐름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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